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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속초사람입니다1. #칠성조선소

Magazine #somewhere / LOCAL LIVE


속초 여행자들은 오늘도 칠성조선소에 들르고 , 조선소안의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에서 차를마신다 . 몰려드는 인파의 8할은 카페에 발도 붙이지 못하고 , 조선소와 맞닿은 청초호를 바라보다 되돌아간다 . 비일상적인 일상이 자리잡은 그곳에서는 의문조차 생경해진다이들이 조선소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그것도 현재진행형의 조선소가 아닌폐업후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남은 조선소를뉴트로열풍을 넘는 이유가 있을까?

“ 글쎄요 , 잘 모르겠어요 . 근데 대부분이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찍으러 와요그런식으로 다 소비하는 것 같아요 .여행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고 .걸러지겠죠… 시간이가면 .” 칠성조선소대표 최윤성이 말했다 “대다수는 이곳을 카페로 기억해요 . 사람들은 아무래도 소비하는 것으로 공간을 정의하려 하니까요입장료를 받았다면 카페로 여기진 않았을 거에요그러면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오지도 않았겠지만예약제로 운영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 저희가 이 공간을 만들때 바랐던 것을 어느 정도만이라도 공유하는 분들이 오시면 좋을텐데… . 아내 백은정이 덧붙였다.  “저희가 원하는 공간을 보러오기보다는 ‘속초의핫플 ’이라는 곳을 찾아오시는 분이 많아요이곳을 함부로 대하는 분도 있고그래서 남편이 스트레스받는 부분도 있어요. 


이곳은 한국전쟁당시 속초로 피난온 그의 할아버지가  1952년에 세운 조선소였다 . 가업을 물려받은 아버지가 가족의 삶을 지탱하던 현장이기도 했다조선소경영에는 굴곡이 있었다속초앞바다에서 잡힌 오징어명태가 전국으로 흩어지던 수산업의 호황기가 있었지만 , 1990년대 초반 목선이 FRP(유리섬유보강플라스틱 ) 선박에 밀리면서 조선업은 사양길로 들어섰다. 2017년까지 수리조선소로 연명하던 이곳이 폐업을 결정하며 칠성조선소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최윤성은 그 역사를 끝낼 수가 없었다지금은 카페가된 건물은 그가 여섯살때부터 살던집이었다목선의 뼈대아래서 술래잡기를 했고 , 배의 베어링이 망가지면 나오는 쇠구슬로 구슬치기를 하고 놀던 그였다망치소리대패질소리는 엄마의 목소리처럼 당연하고 익숙한 유년기의 소리였다.




조선소 앞마당에 매일 배가 오르고 내렸는데 그 중저음의 우웅대는 굉음이 굉장했어요. 소리보다 냄새에 대한 기억이 커요. 특정 수종의 나무 냄새는 칠성조선소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냄새예요. 살다가 별안간 그 냄새가 아주 강력하게 떠오르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원체험의 배경을 다시 마주한 그는 칠성조선소의 시간을 천천히 거슬러 오르기로 했다. 그에게 남아 있는 기억의 편린만이 이곳의 전부가 아닐 테니.

그는 생각, 자료, 물건, 기록, 구술 등 모든 것을 모아 칠성조선소가 지닌 것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무언가로 채운 공간 그 자체로, 어떤 주제에 집중하는 전시나 행사로, 합당한 교육으로, 혹은 어떤 풍경으로. 그 모든 것은 불특정 다수가 지금 칠성조선소에서 마주하는 것이자 최윤성백은정 부부가 사는 오늘이었다.


그 오늘에 다다르기 전, 최윤성이 밟아온 길. 속초에서 조선집 아이, 칠성집 아이로 살던 그는 청년이 되어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기억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가 만들고 있던 것은 배였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것을 절대 허락지 않았던 부모님의 뜻은 유년기 기억과 청년 최윤성의 삶 사이에 차단막처럼 끼어들었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흐름으로 연결되었다목재 쓰레기로 오직 감각에 의지해 만들어가는 배는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목선에 점점 가까워졌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목선의 재료가 되는 구부러진 나무의 구부러짐이 편하게 받아들여지는 정도 같은 것. 그건 눈이 지난 세월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미술 하는 사람으로서 배에 대한 것을 내 방식대로 풀어보자 싶어서 진행한 작업이었는데 혼자 작은 배를 만들고 나니 진짜 배의 건조 작업이 궁금해졌다. 미국으로 건너가 랜딩 보츠 빌딩스쿨이라는 일종의 직업학교에 입학해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도면을 보며 나무를 켜고 잘라 만드는 것부터 완성한 배의 판매와 양도까지 책임지는 과정이었다3년 동안 매일 15시간 정도 배를 만들었다. 혼자 만든 배학부 조소과 동창인 아내와 같이 만든 배도 있었다. 일상이 오직 배에 몰입돼 있던 상태였다. 탁월한 성형 감각과 기술을 확인하고 인정받는 시간이었고, 고된 육체가 괴롭지 않을 정도로 충만한 날들이었다. 배라는 대상에 마음이 다가서는 시간이기도 했다. 배의 외형만 볼 때는 느낄 수 없는 건데, 배의 뼈대가 세워지는 과정을 보다 보면 왠지 짠하기도 하고 감동적인

것과는 다른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이 있어요. 친구들하고도 스페셜하다기보다는 썸띵이라는 표현을 하거든요. 말로 하기 어려운 무언가예요.

그 무언가를 안고 2014년 속초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조선소 일을 거들면서 동시에 칠성조선소 레저 선박 브랜드 와이크래프트보츠를 론칭해 카약과 카누를 만들었다. 배 길이와 무게를 줄여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인 형태에 내구성, 완성도 미적 감각까지 더한 맞춤형배였다. 

카약, 카누의 레저문화가 열리는 시기인 듯 했지만 안타깝게도 과잉공급 시장의 벽을 체감하고 물러서야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세월호, 메르스,국정 농단이라는 키워드가 연이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해양레저를 향해 뻗어있던 그들의 돛은 잠시 내릴 수밖에 없었다.






“ 항상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게 당연할 수도 있는 것 

 큰 욕심없이 살 수 있는것도 그 시절이 준 특별함이 아닌가 싶어요."


먼길을 돌아 그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은 칠성조선소 그 자체였다그는 정형화된 뉴트로 인테리어를 제하면 남는 것이 없는 그런 공간은 원치 않았다중요한 것은 칠성조선소의 스토리를 공간안팎에 성실히 구현하는 것그래서 칠성조선소만의 공간 정체성이 저절로 우러나는 것이었다“복합문화공간카페같은 단어보다는 칠성조선소라는 말이 저희가 원하는 방향인 것 같아요

칠성조선소는 그냥 칠성조선소였으면 좋겠어요그런데 막상 오픈은 했지만 아직 미완성이라 ‘아됐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공간을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조선소 영업종료 후 공간을 기획하고 채우기 시작한 것이 불과 2년전이다조선소의 오래된 도구와 기계카누와 카약을 오브제삼은 전시공간도 만들고‘바다와 삶 ’이란 주제에 공명하는 

공연이나 영화를 자주 상영해 조선소와 오늘의 감성을 이어주었다






배의 기계를 수리하던 옛 작업실에서는 조선소의 가치와 같은 무게의 책들을 선보이는 동시에 배 목수들의 삶이 담긴 아트필름도 상영한다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연동되고 확장하는 공간이다언젠가 공간의 한 축이 될 기록작업은 꾸준히 진행 

중이다칠성조선소에 관한 자료는 물론 오래된 항해일지와 선박도면 등 배관련 자료를 아카이브화하고 배 목수들의 생애 구술사를 축적한다그가 뛰어 놀던 나무제재소 자리는 놀이터가 되었다유년기의 ‘조선소안의 놀이’를 대중과 교감하고 나누는 장소다 . 카페는 수익을 내기 위한 방편의 공간이지만머무를 공간이 있다는 것은 칠성조선소의 시간에 사람들의 추억이 쌓이는 시간을 전제하는 것이다그래서 오늘의 칠성조선소는 어제와 다른 칠성조선소가 될 수 있다


최근에는 폰트회사 산돌과 함께 칠성조선소 서체를 개발했다백은정이 말했다“배수리가 끝나면 아버님이 직접 배에 이름을 쓰셨어요그 서체가 보이는 배는 칠성에서 고친 배라는 

아이덴티티가 있었죠그래서 시작된 일이에요저 서체를 남겨야 하는데서체를 남길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이제는 어떻게든 그걸(서체를 보존하는 작업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어요. 


그들 이야기의 끝은 배다미국에서 같이 배를 만들다가 ‘이 좋은 활동을 왜 한국에서는 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 그들이 시도해보기로 한 이야기다“가족이 함께 3일동안 배 한 척을 만드는 교육을 준비 중 이에요작은 목선 정도 만들 수 있는 공간에서 오픈팩토리로 진행할 예정이에요배를 직접 만들고 타는게 소수의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2개의 호수를 끼고 있는 속초의 배문화가 그들의 손에서 그렇게 시작될까그들은 이 질문에 빙긋 웃더니 그저 너무 재밌을 것이라는 생각뿐이라 했다여덟살짜리 아이가 빨리 목공을 배워 배만드는 순간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고더 이상 공간에 자신들의 손이 닿을 필요가 없어져서 가족이 넉넉한 마음으로 배를 타고 놀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원하는 것을 양껏 해낼 수 없는 체력의 한계 , 시간의 제약뿐인 듯 했다배를 만들던 3년이 남긴 것을 이야기하던 최윤성의 목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항상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게 당연 할 수도 있는 것큰 욕심 없이 살수 있는 것도 그 시절이 준 특별함이 아닌가 싶어요. 

그 말이 온전히 재생되기도 전에 그의 고요한 목소리가 다시 포개진다“가족…아내와 아들…음그래도 잘 가고 있는 거 같아요원하는 삶이 뚜렷했던 건 아닌데되게 잘 늙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은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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